중국어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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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일지를 읽고 무안초 박건륭
작성자 : 조정화 작성일 : 2019-07-10 PM 09:40:46 조회수 : 23
김구는 1876년 7월 11일(음력) 황해도 해주 백운방 텃골이라는 시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김구가 태어난 1876년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은 조선과 일본의 대표가 만나 수호통상조약을 맺은 날입니다. 이 조약을 강화도 조약이라고도 합니다. 이 사건이 일어나고 몇 달 뒤에 김구가 태어났으니 하나의 운명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 합니다.
김구의 어린 시절 이름은 ‘구’가 아니라 ‘창암’입니다. 김구는 어린 시절 꽤나 개구쟁이였습니다. 엿이 먹고 싶었던 김구는 아버지의 멀쩡한 숟가락을 반으로 갈라 엿장수에게 팔아 엿으로 바꿔 먹었습니다. 공부를 하고 싶었던 김구는 아버지께 서당에 보내 달라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상민이였던 김구는 서당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김구의 아버지는 집을 아예 서당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때의 김구의 나이는 열두 살 이었는데 글공부를 매우 열심히 하였습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선생님 방에 가서 글을 배울 정도였습니다.
김구가 과거심험을 보러갔을 때 많은 이들이 부정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 김구는 그날 이후 과거 시험공부를 접었습니다. 또 과거시험에 학겹해서 양반이 되겠다는 꿈도 접었습니다.
김구의 아버지는 실의에 빠져있는 김구에게 관상공부를 하라며 <마의상서>라는 관상책을 구해다 주셨습니다. 김구는 이 책을 펴 놓고 자기 얼굴을 거울에 비춰 보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김구가 군대 훈련에 한창 힘쓰던 어느 날, 황해도 신천 청계동에 사는 안 진사라는 사람이 보낸 밀사가 찾아왔습니다. 안 진사와 싸우지말고 서로 돕자는 밀약을 세웠습니다. 안 진사는 김구를 따뜻하게 마주했습니다. 그날부터 청계동 생활이 시작되었고 김구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1895년 일본낭인들 손에 명성황후가 살해되고 조선에서는 일본의 간섭아래 전국에 단발령이 내려졌습니다.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에 분노해 의병에 가담했고 그 후에도 언젠가 복수하리라는 생각을 늘 해 왔던 것 같습니다. 김구는 자신의 판단을 믿고 이 일본일을 죽여 나라의 치욕을 씻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결심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참을 망설였습니다. 그러던 중에 한줄기 빛처럼 스승 고능선이 가르쳐준 교훈이 생각이 났습니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로다” 김구는 오랜 고민 끝에 죽음을 각오하고 일을 치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김구는 일본인을 죽일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일본인이 식사를 마치고 문기둥에 기대고 있었을 때 죽였습니다. 김구는 그 일본인을 죽인 뒤 그의 소지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자는 일본육군 중위였습니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미우라도 아니였고 공범인지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김구는 도망칠 생각을 하기는커녕 포고문을 써서 자신이 한 일을 당당히 밝혔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김구는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김구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구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져 싸웠기 때문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시간이없어 이기까지밖에  못써 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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